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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하여

by 지식한zoom 2024. 3. 8.

고대 그리스 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은 예전부터 고대 그리스에서 흥한 철학의 통칭이다. 요즘에 말하는 철학 뿐만 아니라, 자연철학(물리학) 및 수학을 포함한 학문이나 학구적 영위의 총칭이다.

철학 또는 철학자라는 말을 가장 먼저 지은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전해진다. 철학자를 포함한 '지자(소포스)'는 소피스트라고도 불렸는데 시인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리스 철학의 시초를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시작되는 이오니아 학파와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는 이탈리아 학파로 크게 나누었는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전자의 계보로 보고 파르메니데스, 제논, 에피쿠로스(에피쿠로스 학파)들은 후자의 계보라고 언급하고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의해 좀 더 깊이 말하자면철학에는 자연철학, 윤리학, 논리학의 세 개의 부문이 있는데, 먼저 자연철학이 발달하였고, 그 다음에 소크라테스가 윤리학을 더해 제논이 논리학을 확립했다. 윤리학에는 아카데메이아 학파와 키레네 학파, 앨리스 학파, 메가라 학파, 키니코스 학파, 에레트리아 학파, 궤변 학파, 소요학파 그리고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라고는 10의 학파가 있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탈레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를 이 구분에 포함한다.

 

플라톤 동상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B.C. 6세기경 그리스에서는 본토보다도 식민지에서 문화가 더 발달했는데, 특히 그리스 민족 중 한 종족인 이오니아 인이 이주한 소아시아 서해안의 식민지는 무역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다른 여러 나라와의 거래가 활발한 만큼, 전통적인 관습이나 관념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는데, 이것으로 인해 학문 탄생의 모태인 자유 정신, 합리 정신이 출현하였다. 특히 이오니아 식민지의 중심 도시 밀레토스에서 이러한 현상이 많이 일어났는데, 철학의 할아버지인 밀레토스 출신의 탈레스와 그의 제자 및 학우들로부터 그리스 철학의 제1기인 자연 철학의 시기가 시발점이 됐다.

이 시기의 그들의 관심사는 겉으로 보기에 잡다하고, 변화 무궁한 자연 현상의 근저에는 어떤 근본 물질, 즉 원질이 있어서 이 원질의 변화나 변형에 의해 만물이 생성할거라는 신념을 기반으로 이 원질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였다.

탈레스가 세계의 원질은 ‘물’이라고 주장한 이후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질을 무어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한자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이 ‘수’(數)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으며, 혹은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는 다(多)와 변화를 감각의 미망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여 불생불멸, 불변부동, 유일절대 신(神) 혹은 유(有)를 주장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어떠한 한 가지의 원질만 가지고서는 삼라만상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으며 원질을 ‘물’, ‘불’, ‘공기’, ‘땅’의 4종이라고 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 4종으로도 부족하다 하여 질적으로 상이한 수많은 종자를 원질이라 주장했고 마지막으로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질적 차이를 양적 차이로 환원하고, 만물은 질적으로는 같지만 오직 형태상으로만 차이가 있는 불가분할의 원자로부터 성립한 것이라고 의견을 내노았다.

이처럼 그리스 철학의 제1기는 데모크리토스에 걸쳐 마무리 되는듯 했으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가 정치 문화의 본고장이 되자 자연계보다 인간계에 사람들의 이목이 모아졌고, 이에 따라 그리스 철학은 제2기인 인간 연구의 시기로 들어가는데, 그때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소피스트들이었다.

각자 개개인의 이슈를 흥미의 중심으로 하고, 그에 따라 나라 전체를 분리하게 한 그들의 운동이 그리스 시대의 계몽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은 마땅히 그러한 일이다. 개인은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인민 집회나 법정에 있어서, 상대편을 설득할 수 있는 교양을 함유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교양을 전달한 것이 소피스트들인데, 그 당시에 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체의 인식의 완전한 상대성이 철학상의 가정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부정(不正)도 정(正)으로 만들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걸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철학에는 꽤 안좋은 면이 있었지만 생산적인 맹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인간을 연구의 중심으로 한 것은 인식론과 윤리학의 고찰을 장려시켰고, 또 학문, 법률, 도덕, 종교 등에 있어서의 일체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소피스트적 부정이야말로 이러한 인류의 재보를 위한 전사로서의 소크라테스를 활동하게 한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헬레니즘 철학

고전적 그리스는 헬레니즘 시대로 들어가고, 국가적 지반의 유실과 함께 개인주의는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의지할 곳을 가지지 못한 개인을 위하여 실천적 생활규범을 맡겨둘 필요가 있었다. 이 시대 이후에 탄생하고 그 후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 여러 학파는 형이상학이나 물리학도 연구했지만 그들의 많은 관심사는 윤리학 그 중에서 개인 윤리학이었다.

스토아 학파는 외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족한 현자의 심경을, 에피쿠로스 학파는 진정한 내적 쾌감을 추구했으며 회의학파는 외계의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었다. 스토아 학파의 움직임은 기원전 300년경으로부터 로마 제정시대까지 계속됐고, 에피쿠로스 학파도 수백 년 동안 큰 영향을 끼쳤다.

고대 철학은 신지학에 의하여 마무리 되었으며, 인간지의 불완전성이 증명되었으므로 구제는 신앙에 의해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또 한번, 여러 선행학설을 시발점으로 하여 시대의 요구에 응한 일종의 철학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일체 사물의 정신적 근원으로서 이데아를 주장하고, 이데아의 창조자로서는 신을 떠올리고, 신비적 직관에 의하여 신의 경지를 경험하려고 하는 것이 신플라톤 학파의 근본사상이었다. 신플라톤 학파나 이와 비슷한 경향은 이에 대적하는 일대 세력으로서 기독교가 출현하자 압도되었다.

 

고대 그리스 벽화